먼저 배경부터 짚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지난 6월 2일 시장 선거를 치렀다. 한국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이 선거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만 11월에 다시 맞붙는 결선 방식이다. 둘째, 캘리포니아는 우편투표 비중이 매우 높고 개표가 느리다. 그래서 당선자가 며칠씩 안 나온다. 이 두 가지가 이번 사건의 씨앗이 됐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예측시장 폴리마켓이 있었다.

1. 무슨 일이 있었나
LA 시장 선거에서 현직 카렌 배스 시장이 1위로 일찌감치 결선행을 확정했다. 진짜 승부는 2위 자리였다. 선거 당일 밤, 2위는 뜻밖에도 예능 스타 출신의 공화당 후보 스펜서 프랫이었다. 진보 성향 시의원 니타 라만은 3위로 밀려 있었다. 이 시점만 보면 11월 결선은 배스 대 프랫 구도였다.

그런데 닷새가 지나는 동안 순위가 뒤집혔다. 늦게 도착한 우편투표가 개표될수록 라만이 프랫을 따라잡았고, 결국 추월했다. 미국 AP통신은 배스와 라만의 결선 진출을 확정했다. 프랫은 2위 자리를 놓쳤다. 이건 한국으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사전투표함을 나중에 열었더니 특정 후보 표가 쏟아져 순위가 바뀐 것과 같다. 실제로 우리 지방선거에서도 강남의 본투표 표가 늦게 개표되며 오세훈이 새벽에 정원오를 역전한 일이 있었다. LA는 그 방향만 반대였을 뿐, 늦게 들어온 표가 한쪽으로 쏠려 순위가 뒤집힌 구조는 똑같다.
2. 배당 그래프가 흔들렸다
이 느린 역전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곳이 예측시장이었다. 폴리마켓과 칼시(Kalshi) 같은 사이트에서는 누가 결선에 갈지를 두고 실제 돈을 걸 수 있다. 배당, 즉 각 후보의 당선 확률이 실시간으로 그래프로 표시된다.

선거 당일만 해도 프랫이 결선에 갈 확률은 70%대로 높았다. 그러나 우편투표가 집계될수록 그래프가 곤두박질쳤고, 결국 라만 99%, 프랫 1%로 완전히 뒤집혔다. 프랫에 돈을 건 사람들은 닷새에 걸쳐 자산이 천천히 녹는 것을 지켜봤다. 그 좌절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폴리마켓에는 심지어 "프랫이 재검표를 요청할 것인가"를 두고 베팅하는 마켓까지 새로 생겼다. 패배한 후보의 다음 행동에까지 돈이 걸린 것이다.
3. 그래프 한 장이 '부정선거 증거'로 둔갑하다

프랫의 배당이 떨어지자, 미국의 일부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들이 일제히 나섰다. 이들은 폴리마켓과 칼시의 배당 하락 그래프를 캡처해 올리면서, 캘리포니아가 프랫을 떨어뜨리려고 표를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한 인플루언서는 50만 명 넘는 팔로워에게 프랫이 질 때까지 표를 세고 있다는 식의 글을 올렸다. 논리는 단순했다. 예측시장 배당이 갑자기 움직였으니 뭔가 음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의 증거는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배당 그래프 한 장이 그대로 '증거'로 둔갑했다. 여기까지였다면 흔한 온라인 음모론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사실이 이 사건의 무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4. 알고 보니, 예측시장이 돈을 주고 퍼뜨렸다
미국 매체 세마포가 처음 보도하고 NPR 등 여러 언론이 확인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부정선거를 주장한 그 게시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폴리마켓과 칼시가 돈을 주고 후원한 광고성 게시물이었다는 것이다. 화면 맨 아래 작은 글씨로 '유료 파트너십(paid partnership)'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예측시장 회사들은 자기 사이트로 사람을 끌어모으려고 인플루언서에게 돈을 주고 홍보 글을 쓰게 한다. 그런데 그 돈 받은 홍보 글에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섞여 들어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거래량을 늘리려던 광고가, 결과적으로 선거 불신을 퍼뜨리는 도구가 됐다. 한 분석에 따르면 폴리마켓이 후원한 게시물로 선거 관련 허위정보를 퍼뜨린 인플루언서는 최소 16명, 이들의 글이 닿은 사람은 합쳐서 1,300만 명에 이른다. 칼시는 뒤늦게 일부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보도 시점까지 일부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폴리마켓은 다양한 성향의 파트너와 협업한다는 원론적 해명만 내놨다.
5. 트럼프 대통령까지 '부정선거'를 외치다
음모론은 결국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6월 8일 월요일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며 조작된 선거라고 적었다. 몇 시간 뒤 다시 글을 올려, 프랫이 그렇게 앞서고도 결선에서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캘리포니아를 3류 국가에 빗대고 또다시 조작 선거라고 주장했다.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선거가 실시간으로 도둑맞고 있다며 법무부는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재선거를 요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현재까지 트럼프나 공화당이 이 LA 예비선거의 재투표나 재선거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결과를 조작이라고 규정했을 뿐, 구체적인 재선거 절차를 밟자고 하지는 않았다. 일부 지지자가 법무부의 개입과 조사를 촉구한 정도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이 발언의 진짜 의도를 다른 데서 찾는다. 선거 소송 전문 변호사 마크 일라이어스는 트럼프가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하고 있다고 본다.
11월에는 캘리포니아의 여러 선거구가 민주당 승리로 호명될 것이 거의 확실한데, 트럼프가 그 결과를 미리 깎아내려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공화당에 만들어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캐나다 CBC도 이번 소동이 11월 중간선거 개표 밤의 예고편일 수 있다고 짚었다. 다시 말해 이번 LA 선거를 향한 조작 주장은 이 선거 하나를 뒤집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선거를 앞두고 불신을 미리 심어두려는 포석에 가깝다는 것이다.
6. 그래서 진짜 부정이 있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입증된 부정은 없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트럼프 자신의 법무부가 이 의혹을 반박했다는 사실이다.
음모론자들은 개표 도중 한 묶음에서 프랫의 표가 0표로 기록됐다며 이것이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검사 빌 에세일리는 카운티 공식 기록을 검토한 결과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모든 후보가 매 집계 갱신마다 표를 받았다고 직접 밝혔다.
AP는 그 0표의 정체가 자동 갱신 과정의 시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의 갱신에서 배스와 라만의 표가 먼저 반영됐고, 정확히 1분 뒤 갱신에서 프랫의 표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부정이 아니라 데이터가 표시되는 순서의 문제였을 뿐이다. 정치 성향이 서로 다른 미국 매체들조차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프랫이 표를 도둑맞았다는 주장은 사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라만이 역전한 이유는 분명하다. 캘리포니아의 느린 개표, 늦게 도착하는 우편투표, 그리고 진보 성향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더 늦게 내는 경향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본다. 개표 초반에는 공화당이 앞서다가 우편투표가 집계되며 민주당이 따라잡는 패턴이다.
배당이 격렬하게 움직인 것도 부정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약점의 신호에 가깝다. 프랫처럼 화제성만 큰 셀럽 후보가 걸린 마켓은 거래량이 얇아서, 적은 돈으로도 배당이 크게 출렁인다. 호가창이 비어 있을수록 작은 베팅 하나에 그래프가 요동친다. 격렬한 와리가리는 정교한 예측이 아니라, 그 시장에 돈이 얇게 깔려 있다는 뜻일 때가 많다.
7.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
이 사건은 예측시장을 신뢰해 온 사람에게 가장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측시장이 출구조사보다 나은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실제로 폴리마켓은 한국 대구 선거에서 출구조사가 놓친 추경호의 우세를 끝까지 맞혔다. 하지만 같은 배당 그래프가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순간, 그것은 신호가 아니라 소음을 키우는 확성기가 된다. 배당이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는 부정의 의미가 전혀 없는데도, 그 그래프는 음모론에 가장 그럴듯한 그림을 제공했다. 조건은 완벽했다. 거래량 얇은 시장, 화제성만 큰 셀럽 후보, 느린 개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지지층. 여기에 예측시장 회사의 광고비까지 더해지자, 배당 그래프는 순식간에 정치적 무기가 됐다.

서울 송파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봉쇄된 투표함과, LA의 흔들린 배당 그래프는 겉보기엔 전혀 다른 사건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초접전과 느린 개표가 만나는 곳에서, 사람들은 행정의 빈틈이든 시장의 출렁임이든 무엇이든 부정의 증거로 읽으려 한다. 예측시장의 진짜 가치는 배당의 출렁임을 흥분거리로 소비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 차갑게 구분하는 데 있다. 그 구분을 놓치는 순간, 가장 정교한 시장조차 가짜뉴스의 도구로 전락한다.





![[79%] 오디세이, 오스카 최다 노미네이트될까? 🏆](/_next/image?url=https%3A%2F%2Fd5u4untiwfb79.cloudfront.net%2Farticles%2F1784609525978-7d45e9ba-ae6b-4d1a-916e-8c394b64e8f3-variant_04_-_30-36_-_-_-_-3.png&w=3840&q=75)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부정선거 재선거
부정 선거 재선거
여기저기 선거로 난리구만...